▶기본정보
바그다드 카페(1987). 독일, 미국
감독 : 퍼시애들론
주연 : 마리안느 세이 지브레트, CCH파운더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등급 :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 108분
▶영화 속으로
바그다드 카페를 말할 땐 나른하고 몽환적인 주제 ost가 먼저 떠오른다.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한 이미지 때문인지 음악을 들으면 뭔가가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막연하게 어렵고 우울한 영화일 거라 속단한 모양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했고 메시지 역시 밝고 긍정적인 영화다.
황량한 사막 가운데에 다 쓰러져 가는 주유소와 모텔을 운영하는 브렌다에겐 고된 현실 외엔 희망이랄 것이 보이지 않는다. 도와주는 법 없이 일은 나 몰라라 하는 가족들 때문에 혼자서만 끙끙대며 생활을 꾸려가는 모습은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브렌다의 표정엔 여유라곤 찾아볼 수가 없이 짜증과 불만만이 가득하다. 야스민이 처음 찾아왔을 때조차 그녀는 손님을 대하는 주인의 태도라 보기 힘든 불손함으로 낡고 허름한 자신의 모텔에 묵으려고 하는 여자의 정체를 수상쩍어할 뿐이다. 야스민은 카페에 찾아온 행운의 천사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 순 없었다. 사막 한복판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야스민 역시 어리둥절하고 막막하긴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영화는 막막한 현실에 각각 혼자 남겨진 여자 둘이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브렌다의 행복은 스스로 찾아갔다기 보단 야스민에 의해 변화하고 마음을 열어감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그래서 야스민이 비자 문제로 돌아간 즉시 그 마법은 깨져버린다. 그건 그녀가 의지가 없거나 그럴 자격이 없어서라기보다, 아마 브렌다에게 놓인 현실의 무게가 더 무겁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반면 야스민이 행복 전도사가 된 것은 남편이 집을 나가버렸다는 브렌다의 사정을 카페 직원으로부터 듣고 나서부터였다. 연민이랄지, 공감대 같은 것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야스민에겐 상대를 배려하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무례하게 대하는 브렌다에게 한번쯤 맞대응을 했을 법도 한데 그녀는 오히려 브렌다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친구가 되어 준다. 자신의 아이들을 뺏겼다고 생각한 브렌다가 야스민에게 심한 말을 한 후 다시 돌아와 사과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처음으로 브렌다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고 또 그 마음을 받아주는 이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그다드 카페는 활력을 얻어 간다. 갑작스러운 캐릭터 변경이라도 된 것처럼 손님들 앞에서 마술 공연을 하며 활짝 웃는 브렌다의 모습은 너무 낯선 나머지 굉장히 희극적으로까지 여겨졌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불가능한 기적을 야스민은 자신이 머문 작은 세계에서 이루어낸다. 이것은 야스민이 카페에서 하는 공연보다 훌륭한 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하고 고전적인 서사와 사막이라는 배경 때문인지 다소 동화적인 요소가 느껴지는 영화의 말미는 해피엔딩을 향해 박자를 맞춰 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브렌다가 다시 돌아온 남편과 포옹하는 장면만 없었어도 좋았을 뻔했지만, 남편도 이제 열심히 살 거라 상상해 본다. 영화가 끝난 후 흘러나온 ost가 전처럼 그렇게 우울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은 어떤 기적의 전조, 나에게 다가올 행복에 앞선 불행을 보내는 송가 같은 의미로 해석의 여지가 더 다양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더 이상 끝이 연상되지 않는 것은 야스민과 브렌다, 두 여자의 용감한 이야기가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절망 앞에서 그 이후에도 펼쳐질 수 있는 삶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말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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